[대원전기]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언제든 부족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재화라는 점을 정부가 소비자에게 인식시킬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김발호 홍익대 전자전기공학부 교수는 국회 추미애․전정희․전순옥 의원 공동주최로 21일 국회에서 열린 정책토론회에서 “우리나라보다 경제규모나 생활수준이 높은 대부분의 국가에서 크고 작은 정전사고가 발생해도 소비자들이 통상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이제는 정부와 정치인들이 무조건적으로 높은 전력품질을 유지해야 한다는 정책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정부의 역할은 순환정전 등을 단행할 조건에 대한 규칙을 정하면 되고 사유가 타당할 경우 정전이 되도 담당자들이 자율적으로 정전을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며 “현재는 여건이 그렇지 않다보니 전력당국이 전력예비력을 높게 설정하고, 국민들에게 불필요한 절전을 강요하는 등 보수적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또 “최근 전력수급 위기가 과거 전력수급계획에서 수요예측을 잘못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지만 올해 초 수립된 제 6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은 최악의 시나리오”라며 “1년에 열흘도 안돼는 최대 전력수요를 맞추기 위해 필요 이상의 발전소를 짓는데 수조 원을 투자하는 것은 매우 비효율적인 처사”라고 비판했다.
그는 또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송전망 건설과 관련해 “발전설비가 충분해도 송전계통이 취약하면 수급불안이 초래되는데도 민간출신 한전 사장들이 신규설비투자와 노후설비 교체 등을 위축시켜 송전계통 불안이 가중됐다”며 “밀양 송전선 건설 문제의 경우 수도권 부하집중 때문에 건설하는 것인 만큼 부하집중지역(수도권)과 발전집중지역간 요금을 달리하는 지역별 요금 차등제도를 도입한다면 상당 부분 민원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서는 최근의 예비력 부족이 블랙아웃을 가져올 것인지, 전력거래소가 강조하는 전력예비력 400만kW가 적정한지, 그리고 EMS가 제대로 활용되고 있는지에 대한 주제발표와 토론이 이어졌다.

◆블랙아웃의 정의와 원인은= 블랙아웃(대정전)이라고 하면 전체 계통의 정전을 의미하지만, 일반적으로 15%의 소비자가 정전을 겪으면 블랙아웃이라 한다. 미국에서는 지난 1965년과 2003년 대정전이 발생한 바 있으며, 우리나라는 2011년 9월 15일 순환정전을 경험했다.
지금까지 발생한 대정전은 주로 한 가지 원인이 아니라 송전계통에 문제가 발생하거나 계전기 고장, 인적실수 등에서 발생했다. 전력수요 급증으로 인한 대정전은 발생한 바 없으며, 예비력 부족의 경우 주로 순환정전이 실시된다.
김영창 아주대 명예교수는 “전력당국이 전력예비력 부족을 이유로 온 나라를 블랙아웃 공포에 떨게 하고 있다”며 “특히 전력거래소는 400만kW의 예비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대란이 일어나는 것처럼 호들갑을 떨고 있다”고 주장했다.

◆예비력 400만kW 과연 적정한가= 김영창 교수는 “미국은 150만kW의 운전예비력을 유지해도 문제가 없다”며 “100만kW 원전 4기가 동시에 고장을 일으킬 확률은 거의 없어 400만kW 순동 예비력 확보는 무의한 것이고, 연료비 낭비만 가져올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우선 전력거래소 수요예측실장은 “운영예비력 400만kW는 전력시장 운영규칙에 명문화돼 있을 뿐만 아니라 전력수요는 실시간으로 변동하기 때문에 이에 상응토록 발전기를 운전해야 적정 주파수 유지와 안정적인 전력공급이 가능하다”며 “400만kW 중 실제 운전예비력은 150만kW이고, 나머지는 발전기고장, 수요예측오차 등에 대비하는 대기․대체예비력”이라고 해명했다.
김 실장은 또 “김 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미국의 운전예비력도 150만kW지만, 운영예비력은 우리나라보다도 많은 520만kW 이상”이라며 “9.15 순환정전 이후 수행한 연구과제에서도 560만kW 이상 운영예비력을 가져가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덧붙였다.

◆전력계통운영시스템(EMS) 정상 작동하나= 김영창 아주대 교수는 “전력거래소가 EMS를 정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면 실시간으로 예비력 파악이 가능해 적정예비력을 낮춰도 문제가 없을 것”이라며 “거래소에서 발표하는 예비력은 EMS에서 계산된 수치가 아니라 신뢰성이 떨어진다”고 비난했다.
김 교수는 또 “전력거래소가 EMS를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불안한 상태에서 계통운용을 함으로써 계통붕괴가 일어날 확률이 매우 높다”고 지적했다.
김발호 홍익대 교수도 “EMS 논쟁은 양 측의 논리가 팽팽해 뭐라 결론을 내리기 곤란하다”며 “다만 전력거래소가 EMS를 제대로 활용한다면 실시간 계통운영을 통해 실제예비력을 정확히 계산할 수 있는 만큼 운영예비력을 더 낮춰도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김우선 전력거래소 실장은 “그동안 국회에서 제기한 EMS관련 쟁점 5개 사항에 대해 사실관계를 규명하기 위해 지난 4월부터 약 80일간에 걸쳐 조사했다”며 “그 결과 조사위원 다수가 개선의 여지는 필요하지만, EMS의 정상적인 운영에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