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원전기]

서울시가 나트륨등이 설치된 골목(왼쪽)을 빛공해 방지법에 맞춰 컷오프형 타입의 LED보안등으로 교체한 모습.

과도한 인공조명을 ‘빛 공해’로 규정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도록 규정한 ‘인공조명에 의한 빛 공해 방지법’이 시행된 지 1년이 지났다.
지난해 2월부터 시행된 빛 공해 방지법은 특정 지역에 설치된 장식조명(건축물·교량·조형물 등), 광고조명(옥외광고물 등의 관리법에 따른 허가대상), 공간조명(가로등·보안등·공원등 등)의 휘도와 조도를 관리하기 위한 것으로, 이를 위해 지자체장은 용도지역, 토지이용현황 등을 고려해 제1종부터 제4종까지 조명환경관리구역을 지정해야 한다.
환경부는 이에 맞춰 이미 제1종(자연 및 생태보전지역), 제2종(농촌, 산촌 및 교외 전원), 제3종(주거지역), 제4종(상업지역) 별로 ‘빛방사허용기준’을 마련했고, 이를 위반할 경우 과태료 부과 등의 제재조치를 취한다는 방침이다.
빛 방사 허용기준을 위반한 조명시설의 사용중지 또는 사용제한 명령을 3회 이상 위반한 경우 10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될 정도로 제제수준도 상당히 강력하다.
단 기존 조명기구의 경우 조명환경관리구역 지정 이후 5년 간 법 적용이 유예된다.
빛 공해 방지법은 그동안 무분별하게 사용된 인공조명을 인간과 동·식물에 피해를 입힐 수 있는 신종 공해로 규정짓고, 관리대책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지자체와 조명업계가 아직도 빛 공해 방지법을 실행에 옮길 준비가 안 돼 있다는 점은 시급히 해결해야 할 숙제다.

▲방지법 시행 이후 후속조치는 지자체가 수행=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는 지난 2월 빛 공해 수인한도(사회 통념상 참아야 하는 정도)와 배상액의 산정 기준을 확정·발표했다.
빛 공해로 인해 분쟁이 발생할 경우 어디까지 참아야 하는지, 배상액은 얼마나 지급해야 하는지를 명확히 한 것이다.
이는 지난해 2월 빛 공해 방지법이 시행된 이후 빛 공해 문제를 제도적으로 풀어가기 위한 기준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환경부는 이와 별도로 현재 가로등, 광고조명 등에 대한 설치·관리기준 마련을 위해 연구용역을 진행 중이다. 보안등과 공원등에 대한 기준은 이미 지난해 12월 고시한 바 있다.
그러나 빛 공해 방지법 제정 이후 중앙 정부의 역할은 사실 여기까지다.
앞으로 이 법을 기반으로 빛 공해 문제를 이슈화시키고, 무분별한 인공조명의 남발을 방지하는 것은 전적으로 지자체의 의지에 달려 있다는 얘기다.
환경부 관계자는 “빛 공해 방지법이 시행된 이후 후속조치는 지자체로 넘어간 상태”라면서 “환경부는 다만 법에 따라 지자체별로 조명환경관리구역 지정을 독려하고, 구역 지정을 위한 실태비용 등을 보조하는 지원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자체·조명업계는 아직 준비 안 돼= 빛 공해 방지법이 시행된 지 1년이 넘었지만 이 법이 본격적으로 효과를 내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이 법의 핵심골격인 조명환경관리구역을 지정한 지자체가 아직 전국적으로 단 한 곳도 없기 때문이다.
그저 서울시와 광주시, 부산시, 경기도, 세종시와 부산 해운대구, 전라남도 신안군 등 일부 자치단체가 빛 공해 방지를 위한 조례를 만든 정도다.
다만 서울시가 올해 7월 관리구역 지정을 목표로 빛 공해 환경영향평가를 진행하는 등 가장 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조명환경관리구역 지정이 중요한 것은 이 구역을 나눠야만 거기에 맞춰 만들어진 빛 방사 허용기준을 적용할 수 있고, 과도한 인공조명을 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의 빛공해 실태와 관리방안을 연구한 김정태 경희대 교수는 “기존 조명의 경우 조명환경관리구역 지정 이후 5년 간 법 적용을 유예하도록 돼 있다”며 “따라서 구역이 지정되지 않으면 계속 방치될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임종민 조명연구원 조명환경연구본부장 역시 “전국적으로 조명환경관리구역 지정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조명업계의 대응이 부족하다는 점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현재 조명업계는 빛 공해 방지법의 존재에 대해서는 대부분 인지하고 있지만 정확한 내용과 적용기준에 대해서는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중론이다.
박선규 조명조합 부장은 “업계가 빛 공해 방지법에 대해서는 알고 있지만 이에 맞춰 제대로 대비는 못하고 있는 것 같다”면서 “빛 방사 허용기준 등에 맞춰 등기구를 새로 설계하는 등 준비하는 기업들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임종민 본부장은 “빛 공해 방지법이 본격적으로 적용되면 기존의 확산형 등기구를 컷오프형으로 개선해야 하고, 이 과정에서 LED조명의 보급이 활성화될 수 있는 요소도 있기 때문에 조명업계에는 분명 호재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장우진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과한 빛을 줄여보자는 빛 공해 방지법은 분명 좋은 취지로 만들어졌고, 계속 가야 한다”면서 “그러나 고가 (빛공해) 측정 장비에 대한 업계의 부담, 전문 교육의 필요성과 같은 초기 단계의 부작용과 함께 현재의 빛 공해와 관련된 판단이나 측정결과가 과연 정당한 지에 대한 논란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시간, 지역 등 경우에 따라 법 기준을 여유있고 융통성이 있게 적용하는 운영의 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 빛 방사 허용기준 논란도 여전
환경부는 빛 공해 방지법을 제정하면서 공간·광고·장식조명별로 과도한 빛의 기준이 되는 ‘빛 방사 허용기준’을 제정했다.
제1종부터 제4종까지 주거지 연직면조도와 발광표면휘도의 최대값과 평균값을 설정해 이 기준을 초과하지 않도록 규정한 것이다.
그러나 이 기준이 과연 적정한가의 여부는 여전히 논란거리다.
이은일 고려대 의대 교수는 “우리나라의 빛방사 허용기준은 국제기준보다 높고, 가까운 일본보다 높아 개선이 필요하다”면서 “실례로 공간조명의 경우 조명환경관리구역 제1종, 제2종, 제3종 구역의 주거지 연직면 조도기준인 10룩스는 수면장해를 일으킬 수 있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업계는 오히려 현행 빛 방사 기준이 너무 낮다고 보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재의 기준을 그대로 적용할 경우 서울 강남대로에 설치된 가로등은 모두 꺼야 한다”면서 “빛 방사 허용기준과 현실은 괴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 선진국의 사례는.
미국은 1972년 애리조나(Arizona) 주를 시작으로 연방정부 차원이 아닌 각 주나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빛 공해 대책을 시행하고 있다. 현재 뉴멕시코, 코네티컷, 콜로라도 등 100개가 넘는 도시가 빛 공해 문제를 관리하고 있다.
호주는 호주규격협회(Australia Standards)가 ‘Control of the obtrusive effects of Outdoor Lighting(AS4282-1997)’에 야간조명관리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제정해 활용하고 있다.
일본은 1972년 오카야마 천체물리관측 협력회의가 만들어지면서 빛 공해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1989년 오카야마현의 비세이쵸에서 일본 최초의 빛 공해 관련 제도인 ‘비세이쵸 광해방지조례’를 제정했다.
이후 각 지역별로 빛 공해 관련조례들이 만들어지다가 1998년 중앙 정부 차원의 빛 공해 대책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졌다.
이탈리아의 야간조명관리제도는 EU가 제정한 빛 공해 방지법의 모태가 된 기준이다.
2007년 기준으로 13개 주에서 빛 공해 방지법을 채택해 활용 중이다.